오늘날 독일 문화 교육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적 요소는 실러의 미학 이론이다. 실러가 그의 저작들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인간은 미적인 상태에 이르러야만 도덕적․윤리적 상태에 이를 수 있고 이러한 미적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상적 국가가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실러가 정의하는 미적 상태란 수동적인 감각 상태를 벗어나 미적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일컫는다. 또한, 도덕적․윤리적 상태에 이르는 과도기적 상태이다. 실러가 주창하는 미의 개념은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가 미의 개념을 미는 주관적인 것으로써,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의 판단이나 정서의 문제가 된다고 정의한 바와는 사뭇 다르다. 칸트가 대상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의 감정적 쾌에 초점을 맞춘 반면 실러는 대상 자체가 주는 객관적인 속성 자체를 미로 규정했다. 인간은 강제적인 물질적인 진지함에서 출발해 비교적 안정이 되면 물질적 놀이 과정에 다다르고 자연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목적이자 수단으로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이러한 미적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미적 상태가 지배하는 왕국에서는 형성력으로만 인간이 나타나고 자유로운 놀이의 대상 그 자체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사고력과 이성이 독자적으로 자유로운 미적 상태에서 도덕적․윤리적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상 국가이자 독일이 지향해야 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Tuesday, December 6, 2022
[Philosophy, Aesthetics] David Hume의 미에 대한 간단한 고찰
미란 대상 자체에 내재하는 성질이 아니라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에 의해 주어진 구조에서 나타나는 어떤 쾌. 미를 향수하는 일은 우리가 관찰하는 대상의 각 부분들이 질서와 구성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데서 얻어진다. (취미의 구성 원리나 법칙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하지만) 그러므로 세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인간성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취미의 근거 또한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Book Review in Korean - Philosophy]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힘에의 의지"를 중심으로
<힘에의 의지 - Der Wille Zur Macht>
니체의 유일한 설명원리 <- 방법적 일원론
생성 - 오직 이것만!
생성; 변화, 운동, 살아있음, 있다, 존대
살아있는 것이 존재다. 더 이상의 존재란 없다.
"생성의 의미는 모든 순간에 충족되고 도달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 유고
생명 = 생성 = 존재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한다 - 이것이 가장 최고의 힘에의 의지이다
힘에의 의지는 존재가 아니다. 생성이 아니다. 오히려 파토스고
힘에의 의지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마지막 사실이다.
Der Wille Zur Macht : Herr-werden, Mehr-werden, starker-welllen-wollen 의지작용
<자기극복에 대하여>
더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너희는 너희를 앞으로 내몰고 열렬하게 타오르게
하는 것을 두고 "진리를 향한 의지"라고 부르는가? (인식 - 확실한 앎 추구)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 나 너희의 의지를 이렇게 부르는 바이다!
너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사유 할 수 잇는 대상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 해석의 첫 번째 조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이만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식의 첫 번째 과정은 사유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가능하게 고정 시킨다.)
너희는 아직도 너희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잇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마지막 희망이자 도취렸다.
-> 니체의 입장에서는 이전에 더없이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은(기존의 지식인들,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규정 지으려고 하지만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것이 그것이기 위한 특정들을 배제 시키기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만든 그 진리에 주객전도 되어 도리어 무릎을 꿇고 만다는 것이다.
인식이라는 것은 힘에의 의지의 하나의 양태, 어떤 것이 상승적인 삶에 더 유용한지
도구적인 해석일뿐이라는 것이다.
강물은 이제 너희가 띄운 조각배를 멀리 떠내려 보낸다.
강물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해석에 절대성이 있으면 안 된다. 한 번 만들어진 해석은
나를 상승 시키고 소멸된다. 나를 더 상승 시킬 해석이 힘에의 의지에서 나오므로.
그리고 생명은 이 비밀도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 그는 말했다.
'보라, 나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 힘에의 의지=자기 극복의 의지
진리의 과녁을 향해 '살아남기 위한 의지'라는 화살을 쏘아 댄 자가 있었지만
그 진리에 명중시킬 수는 없었다.
-> 자기보존의 의지는 있엇으나 그이상, 상승하려는 의지는 없었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쇼펜하우어의 삶의 의지, 다윈의 생존을 위한 싸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그저 현 상태 유지에 머물뿐.
참고자료: 백승영 교수님 강의자료
Monday, December 5, 2022
[Book Review in Korean - Philosophy]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신의 죽음'의 의미/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신의 죽음의 의미>
철학적 함의: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파괴
종교적 의미: 그리스도교 신 개념 및 초월세계 거부
도덕적 의미: 그리스도교 도덕 비판 -> 유럽의 정신적 토대였던 플라톤주의의 끝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파괴>
형이상학적 이분법: 세계를 존재(Episteme)와 생성(Doxa)으로 이원화하고, 전자를 후자에 대한 존재적, 인식적 그리고 가치적 우위를 부여하는 사유방식. -> 변화가 중심인 생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져옴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 기존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예찬하는 자들,
변하지 않는 근원, 즉 일자를 추구하는 자들
"일찍이 차라투스트라도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같이 그러하듯이
인간 저편에 대한 망상을 품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 세계는 고뇌와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신의 작품으로 보였던 것이다."
고뇌와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신, 고통 받고 번민하는 신 => 디오니소스적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상 세계를 대표하는 아폴론적 행위)
"아, 형제들이여, 내가 지어낸 이 신은 신이 모두 그러하듯이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자 망상이었다!"
-> 해석이었음을 의미.
"단 한 번의 도약, 죽음의 도약으로 끝을 내려는 피로감,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바라지 못하는 저 가련하고 무지한 피로감. 그것이 온갖 신을 그리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꾸며낸 것이다."
-> 살기 위해 해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편의 세계", 비인간화된, 그리하여 비인간적인 그 세계는 일종의 천상의
무로서 사람들로부터 잘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존재의 배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면
인간에게 결코 말을 건네지 않는다."
->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과 관계가 없는 세계가 되어버림.
"그렇다. 자아, 그리고 자아의 모순과 혼란이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가장 정직하게
말한다. 사물의 척도이자 가치인, 창조하며 의욕하고 평가하는 자아가 말이다."
=-> 나=신체 (이성&신체 분리 불가능한 총체적인 것)
"그리고 가장 정직한 존재인 자아, 그것은 신체 운운하며, 이야기를 꾸며 대고,
요란을 떨며 부러진 날개를 퍼덕일 때조차도 신체를 원한다."
"병들어 신음하는 자와 죽어가는 자들이야말로 신체와 대지를 경멸하고
천상의 존재와 구원의 핏방울을 생각해낸 자들이다. 이 감미롭고 음울한 독조차도
저들은 바로 신체와 대지로부터 얻어냈겠다! 저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던 비참에서
벗어나보려 했지만 별들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러자 저들은 탄식했지.
"다른 존재와 행복 속으로 기어 들어갈 수 있는 천상의 길이라도 있다면" 하고.
그래서 저들은 도망갈 색길과 피의 잔이란 것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이 배은망덕한 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의 신체와 이 대지에서 벗어 났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이 탈주의 경련과 환희를 누구에게
감사 했던가? 저들의 신체와 이 대지에게였지."
-> 변화하는 생성의 세계가 두려워 생성의 세계를 대변하는 신체를 병들게 하고
초월적인 무엇,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결국 이 초월적 세계를 상정한 것도
병들어 잇는 신체가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게 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신체에게 감사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병들어 신음하는 자들에게 너그럽다. 진정, 그는 저들 나름의 위로와
배은망덕을 두고 노여워하지 않는다. 다만 저들이 병으로부터 건강을 되찾는 자,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되어 보다 높은 신체를 창조하기를 바랄 뿐이다!"
-> 자기 상승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신체를 부정하지 말고 긍정하며 더 높은 신체를 추구하라.
참고자료: 백승영 교수님 강의자료
[Book Review in Korean - Philosophy]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개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 후기 철학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힘에의 의지'를 주저를 포기한 니체의 대표작이다. 이 책을 집필한 니체의 목적은 위버멘쉬로
대변되는 긍정의 철학을 건설하기 위해 건강한 미래인간의 모습을 제시하려는 데에 있다.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위버멘쉬, 신의 죽음 등 여러가지 핵심적인 사유들을 제시하지만
그 중에서 <영원회귀>를 핵심적 사유로 지목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즐거운 학문(1883)과 도덕의 계보(1885)의
중간시점에 저술되었으며 그가 포기하고 말았던 힘에의 의지 구상 직전에 집필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이 책이 흔히 문학작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철학서치고는
꽤나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존의 철학서들이 추상적 이론의 연역적인 서술방식을
채택했다면 니체는 무매개적인 표현을 채택하였다. 이론가의 목소리 대신
예언가와 시인의 목소리, 즉 일종의 아포리즘 형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니체는 비유와 상징 그리고 패러디를 많이 사용한다.
인물: 어린아이, 숲 속의 성자, 줄타는 광대, 배후세계론자, 왕, 예언가, 마술사...
동물: 낙타, 사자, 독수리와 뱀..
식물: 무화과 나무, 사과 나무
자연: 달, 태양, 무지개, 사막
시점: 정오, 오후 등등
패러디: 신약 성서 및 철학적 종교적 문화적 자명성 일체에 대한 패러디
책은 크게 1부의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2부, 3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체계적인 구성이 아닌 임의적 구성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 차라투스트라의 하강
시점: 아침, 새로운 시작
"나는 베풀어주고 싶고 나누어주고 싶다. 사람들 가운데서 지혜롭다는 자들이 새삼스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새삼스레 자신들의 넉넉함을 기뻐할 때까지.
그러기 위해 나 저 아래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네가 저녁마다 바다 저편으로 떨어져
하계에 빛을 가져다줄 때 그렇게 하듯, 너 차고 넘치는 천체여! 나 이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저 아래로 내려가려 하거니와 나 또한 저들이 하는 말대로 너처럼
몰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강의 이유: 자명성(우리가 흔히들 자명하다고 일컫는 모든 것들, 기존의 도덕 관습 종교 등을
전복시키기 위해 실체적인 세계관에서 관계적인 세계관으로 변화: 태양의 의미는 태양이
비추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확보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차라투스트라를 비췄던 것과 같이 차라투스트라 또한 이러한 빛을
나누어주기 위해 하계로 내려가는 것이다.
- 성자와의 만남
신을 사랑하는 숲의 성자와의 만남: 인간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숲이라는 곳 하지만
높은 산에 비해서는 숲과 가깝다. 성자는 완전성, 근원, 그리고 인간계의 불완전성에
대한 근원을 찾기 위해 인간세상이 아닌 숲으로 들어갔고,
유한적인 사람을 긍정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무한성을 지닌 신에 대한 사랑을 설파한다.
성자에게 있어 하강한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은 어린아이 같고 춤추는 자와 같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세상에 내려와
설파하고자 하는 것들은 세상을 파괴시킬 것이며, 차라투스트라 자신도 세상의 증오에
의해 파괴될 것이라고 하며, 증거로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든다.
- 성자와의 대화
사랑에 대한 관점: 성자가 말하는 사랑이란 동정과 연민을 말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사랑하는 자가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냥 주는 아가페적 사랑이며, 충만함의 흘러넘침, 되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을 선물이다.
- '신은 죽었다' 선언
철학적 함의: 니체의 '신은 죽었다'선언은 철학적으로 서양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적 사고의
종말을 함의한다. 기존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근간으로 한 형이상학적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즉, Episteme(형상, 존재)의 세계(신의 세계, 칸트의 Ding an sich)와 doxa(현상)의 세계를
이분화시켜놓고 존재론적, 인식론적으로 Episteme의 세계에 우위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니체는 Episteme 세계를 대변하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이러한 이분법의 종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종교적 함의: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 및 초월세계의 거부.
Q. 형이상학적 이분법이 왜 생기는 것인가?
인간은 심리적으로 확실한 것을 추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살고 있는 현상의 세계에서는
매순간 자기 변화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에서 오는 불안, 고통, 근원적인 불안감이
인간으로 하여금 현상의 세계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형상의 세계를 상정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현상의 세계에서의 삶을 부정하고 병이 들게 되는 것이다.
- 위버멘쉬에 대한 가르침
장소: 숲에 잇닿아 있는 도시의 시장 -> 대중들이 있는 곳, 진지한 대화와 전달이 불가능한 곳, 실패 예견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위버멘쉬의 개념에 대해서는 후에 영원회귀 사유와 힘에의 의지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정리해보겠지만,
머리말에서 나타난 텍스트에 근거하여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체로서의 인간,
대지에 충실하는 인간이 그 조건이 되며, 자기 자신을 경멸할 줄 알고 그것을
극복하는 창조적인 인간상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의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경멸하지 못하며,
즉, 자기비판력이 부재하여 자기 극복도 불가능하며, 모든 것을 작게 만들어 버린다.
- 인물분석
줄타는 사람: 위버멘쉬로 가는 심연의 밧줄을 탔다.
기존의 자명성에 대한 회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래도 의미가 있는 것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며 즉, 자유정신으로의 시도를 하는 존재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익살꾼, 광대: '줄 타는 사람에게 네가 있어야 할 곳은 탑 속이었다.'
즉, 자명성 속에 묶여 있었어야 했으며 그를 뛰어넘었다. 줄 타는 사람은 결국 추락하고
말았고 자명성의 대변가인 이 익살꾼의 무게와 대결했을 때 그는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타는 사람의 위버멘쉬로의 도전 실패: "나 오래전부터 그 악마가 나타나 ~"
여전히 그리스도교 도덕(자명성)에 묶여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완전한 자유정신인 것이다.
- 재시도의 결심
시점: 저녁 -> 사람낚는 어부가 아니라 송장만 낚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시체를
- 차라투스트라의 세 가지 유혹과 극복
광대의 위협: 자명성의 대변가인 광대는 현대인이 차라투스트라의 말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자명성을 파괴하는 전복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투스트라도 예수나 소크라테스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꿋꿋하게 갈 길을 간다.
송장 묻는 자의 위협: 성문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송장 묻는 자를 만나는데
차라투스트라에게 송장 묻는 자의 역할을 하라 한다. 이 말은 자기 극복의
실패물인 송장을 그냥 묻어버리는 것은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시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것을 거부하고 숲으로 들어간다.
예수의 유혹: 인간 세상을 떠나 예수가 주는 양식을 먹고 살아가자는 유혹.
자명성으로 다시 복귀 및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배고픔이 덮쳐왔지만 그곳을 지나쳤다.
또한, 줄타는 자의 송장을 보호함으로써 위버멘쉬로의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예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였다.
- 새로운 방법
시점: 해가 그의 머리 위에 떠있는 정오
차라투스트라 자신의 자기인식의 변화: 창조를 위한 파괴
창조적 건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을 암시.
차라투스트라의 짐승들 등장: 독수리 한 마리 (정신적인 것, 하늘, 긍지),
뱀 한 마리(물질적인 것, 지혜, 뱀)
영원회귀 사유를 갖추고 다시 인간세상에 가서 신의 죽음과 위버멘쉬를 설파하기로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로서 허무주의를 극복했으며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참고자료: 백승영 교수님 강의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