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6, 2022

[Book Review in Korean - Philosophy]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힘에의 의지"를 중심으로

 <힘에의 의지 - Der Wille Zur Macht>

 

니체의 유일한 설명원리 <- 방법적 일원론

 

생성 - 오직 이것만!

생성; 변화, 운동, 살아있음, 있다, 존대

 

살아있는 것이 존재다. 더 이상의 존재란 없다.

 

"생성의 의미는 모든 순간에 충족되고 도달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 유고

 

생명 = 생성 = 존재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한다 - 이것이 가장 최고의 힘에의 의지이다

 

힘에의 의지는 존재가 아니다. 생성이 아니다. 오히려 파토스고

힘에의 의지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마지막 사실이다.

 

Der Wille Zur Macht : Herr-werden, Mehr-werden, starker-welllen-wollen 의지작용

 

<자기극복에 대하여>

 

더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너희는 너희를 앞으로 내몰고 열렬하게 타오르게 

하는 것을 두고 "진리를 향한 의지"라고 부르는가? (인식 - 확실한 앎 추구)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 나 너희의 의지를 이렇게 부르는 바이다!

너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사유 할 수 잇는 대상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 해석의 첫 번째 조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이만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식의 첫 번째 과정은 사유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가능하게 고정 시킨다.)

 

너희는 아직도 너희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잇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마지막 희망이자 도취렸다.

 

-> 니체의 입장에서는 이전에 더없이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은(기존의 지식인들,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규정 지으려고 하지만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것이 그것이기 위한 특정들을 배제 시키기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만든 그 진리에 주객전도 되어 도리어 무릎을 꿇고 만다는 것이다. 

인식이라는 것은 힘에의 의지의 하나의 양태, 어떤 것이 상승적인 삶에 더 유용한지 

도구적인 해석일뿐이라는 것이다.

 

강물은 이제 너희가 띄운 조각배를 멀리 떠내려 보낸다. 

강물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해석에 절대성이 있으면 안 된다. 한 번 만들어진 해석은 

나를 상승 시키고 소멸된다. 나를 더 상승 시킬 해석이 힘에의 의지에서 나오므로.

 

그리고 생명은 이 비밀도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 그는 말했다. 

'보라, 나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 힘에의 의지=자기 극복의 의지

 

진리의 과녁을 향해 '살아남기 위한 의지'라는 화살을 쏘아 댄 자가 있었지만 

그 진리에 명중시킬 수는 없었다.

-> 자기보존의 의지는 있엇으나 그이상, 상승하려는 의지는 없었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쇼펜하우어의 삶의 의지, 다윈의 생존을 위한 싸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그저 현 상태 유지에 머물뿐.


참고자료: 백승영 교수님 강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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